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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그날

‘황당하다’ 라는 말과 ‘당황하다’는 말이 무엇이 다른가 잠시 생각을 하여 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전과 온라인에서 찾아봤습니다. 그 내용을 쉽게 아이들에게 설명한 어느 선생님의 이야기가 있어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쉬가 마려워 급해서 큰 트럭 뒤로 가서 몸을 돌리고 고개를 숙여 몰래 소변을 시원하게 보고 있는데, 그 큰 트럭이 갑자기 출발을 하여 떠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상황을 ‘황당한 것’ 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큰 트럭이 가다가 아직 쉬가 끝도 안 났는데 갑자기 뒤로 후진을 해서 다가오면 그 상황을 ‘당황 스러운 것’이라고 해요.”참으로 공감하게 되는 설명입니다. 한문으로는 ‘당황(唐慌/惶)’, ‘황당(荒唐)’이라고 씁니다.   얼마 전에 저는 컴퓨터 가방을 메고 한 손엔 커피 한 잔, 다른 손엔 전화기를 들고 동네 도서관에 갔었습니다. 내가 즐겨 앉던 자리엔 이미 다른 사람이 앉아 있어서 2층 ‘Quiet Room’으로 향했죠. 유리창으로 된 방문이 열려있는 것으로 알고 그냥 걸어 들어갔습니다. 순간 ‘쾅’ 하는 소리가 났는데 유리창 방문을 머리로 받은 것입니다. 눈에 별이 번쩍 했습니다.   다행히도 넘어지거나 유리창이 깨어지지 않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이마를 만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래층에서 한 백인 여자가 뛰어 올라와 등을 쓰다듬으며 얼굴과 이마를 보고 ‘괜찮으냐’면서 물 한 병 가져 오겠다면서 반창고도 필요하냐고 물었습니다.   그 ‘Quiet Room’ 안에 있던 15~16명 되는 이삼십 대 청년 중 둘이 제게 뛰어와 “아저씨! 괜찮으세요?” “Are you OK? Can I help you?”하고 물어왔습니다. 둘다 한인들이었습니다. 다른 서너 명의 청년들도 다가와 걱정해주었는데 역시 한인 청년들이었습니다.     그 ‘Quiet Room’안에 한인이 저를 포함해 7~8명이 있었던 셈입니다.   이 넓은 미국 땅에서 한 도시의 작은 동네 도서관에서 벌어진 작은 해프닝에 한국어가 오고 갔다는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고마웠습니다. 또 반갑고, 자랑스럽기도 했죠. 그 청년들을 보며, 우리 한인은 미래가 밝다는 생각도 아울러 해보았습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K’라는 브랜드는 일상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좋은 기술, 좋은 옷, 좋은 화장품, 잘 생긴 남녀 연예인, 좋은 차, 흥미진진한 한국 드라마, 노래, 아이돌 그룹 등등…. 길 가다 우연히 만난 타인종들도 우리말 한 두 마디쯤은 쉽게 합니다.   나아가 한국 음식까지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섬기는 교도소사역 26년의 경험중에, 요사이 제소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음식들만 봐도 한식의 인기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먹고 싶어하는 표정과 몸짓으로 ‘불고기’, ‘김치’, ‘소주’, ‘막걸리’ 심지어 ‘식혜’ ‘보쌈’ ‘순대’ 등 우리말로 음식 이름을 말합니다.   그런데, 조국의 근황은 정말 ‘황당’하고 ‘당황’스럽기만 합니다. 지난 3일 대통령의 계엄령의 발표 후에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밤잠을 설칠 만한 일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마무리가 어떻게 나든지 한국이 제 4의 도약을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한 지도자의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 새삼 깨닫습니다. 황당하고 당황할 때 정신 제대로 차려 일어설 때는 서고 갈 때는 가야 넘어지지 않고 살 것 같습니다. 변성수 / 교도소 사역 목사열린 광장 황당 당황 quiet room 유리창 방문 한국 음식

2024-12-11

[열린 광장] 한민족 고유의 사상과 한류

대한민국의 국력이 커지면서 한류 바람도 거세다. 한국 드라마와 음악이 인기를 끌고 올해는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다. 이제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로 여기는 우리 고유의 사상도 널리 알려져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한민족 고유의 사상은 단군 선조의 홍익인간 이념으로부터 삼국시대의 풍류도를 거쳐 조선 말 동학사상으로 꽃피웠다. 이후 냉전 시대를 거치며 인류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사상으로 이어졌다.     세상 만물은 똑같은 것도, 완전히 다른 것도 없이 공통적인 면으로 연결돼 한울을 이루고 있다. 세상 만물에 내재한 이런 한울의 이치와 기운으로 가장 발전한 것이 인간이다.   사람의 육체는 물질로 이루어진다. 여기에 살려는 욕망과 이를 실현하는 힘인 생명이 더해져 생명체가 된다. 생명체는 생명 활동을 더 잘하기 위해 정신을 가진다. 생명과 정신은 생명체의 속성이므로 객관적으로 볼 수 없고 발현되는 성질로 알 수 있다.   생명은 수많은 난관과 시련을 이겨내며 유지된다. 육체적 생명도 세대를 이어 간다. 가족과 민족, 그리고 온 세계 사람들과 연결돼 있다. 인간은 개인적이면서도 집단적인 생명을 가졌기에 타인이 고통을 당하면 본능적으로 동정하고 사랑하게 된다.   정신은 두뇌의 작용이다. 성장하면서 정신에 사회적 도덕이 축적돼 양심을 갖게 된다. 인간은 뛰어난 두뇌를 갖고 있어 자연법칙에 운명을 맡기지 않고 자주적, 창조적으로 자연을 개조해 생존하며 사회적 생명을 갖는다.   인간은 생명력을 객관화해 지식, 제도, 문화 예술 등을 공유한다. 동물은 자기 생명을 객관적 대상으로 체현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유전된 본능만 있을 뿐, 공유는 없다.     인간은 각자 생활 영역을 갖고 분업과 협업을 한다. 다른 사람의 신성한 노동 덕택에 생활할 수 있음에 항상 감사하고 자신도 그에 상응한 노력과 헌신을 해야 한다.   인간은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머지않아 지진·태풍 같은 자연재해를 조절하는 것은 물론 언젠가는 태양계도 관리하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 인권과 주권재민을 원칙으로 한다. 정치는 개인과 집단의 특성을 배려하며 사랑의 공동체가 이뤄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제 한국은 고유의 사상을 세계에 전하는 문화 선도국이 되어야 한다. 위대한 사상과 문화를 갖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변두리 의식에서 벗어나 세계의 중심에 당당히 서야 한다. 그동안 미신과 비과학이 우리 고유의 사상과 문화 발전을 가로막았다. 진리는 간단명료하다. 인간은 자연과 사회의 구속에서 벗어나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존재다. 사람의 능력을 초월한 신은 우리 마음속에 있다. 도덕적 수양과 실천을 통해 신성한 존재에 가까워질 수 있다.     사람을 한울같이 대하는 인간 존중 사상이 널리 퍼져 시기와 질투, 분쟁이 사라져야만 인류는 공존, 공생하며 영원히 발전하게 될 것이다. 김용 / 한울운동 대표열린 광장 한민족 고유 한민족 고유 사회적 생명 우리 고유

2024-12-05

[열린 광장] 올드타이머

부엉이 울음소리에 잠이 깼다.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간이다. 매년 추수감사절을 지나 수은주가 내려가고 새벽 안개가 짙게 낀 날에는 어김없이 부엉이가 와서 운다. 자연의 법칙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그 비밀을 알 수가 없다. 아마 무더운 여름철에는 깊은 산중에 있다가 날씨가 추워지면 먹이를 찾아 인가가 있는 동네로 내려오는 것 같다. 매년 우리 집 지붕에 찾아와서 계절을 알리니 이보다 귀한 손님이 없다.     부엉이 울음소리를 들으니 올해도 다 지나간 느낌이다. 아직 12월 한 달이 남지 않았냐고 반문하겠지만 한 해의 막달인 12월은 산허리의 능선을 지나는 안개와 같다. 바람결에 지나가는 여인의 신비한 옷자락처럼 여운만 남기며 사라진다.     마지막 달의 하루하루는 한 움큼의 모래알처럼 손안에 가득한 것 같지만 어느덧 나도 모르게 빠져나간다. 한 해를 마감하며 할 일이 많을 것 같고 마음만 스산한 12월, 마치 꿈많던 젊은 날의 놓쳐버린 연인의 환상마냥, 아쉬움과 회한으로 올 한해도 이렇게 보낸다. 이런 미완성의 세월을 80번이나 넘겼다.     1984년부터 한국 정부에 해외교민청 설립을 꾸준히 요구했고, 지난해 마침내 재외동포청이 출범했다. 그리고 지난 6월 동포청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한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석류장’ 수훈자로 결정됐다는 소식이었다. 국민훈장을 받는다는 것이 부끄럽고 어색했다.     그런데 순간 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한인 사회의 토대를 마련했던 분들 가운데 최근 2~3년 새 유명을 달리한 분들이 유독 많았다는 사실이다. ‘기부왕’으로 잘 알려진 고 홍명기 회장님을 비롯해 체육계 원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던 분들이다. 지금도 친분이 있는 전 한인단체장 한 분이 병원 응급실에 생의 마지막 날을 기다리고 있다. 모두 그리워지고 보고 싶은 얼굴들이다. 그들은 1960년대부터 LA 한인 타운을 만드는 데 구심적 역할을 한 귀한 분들이다.      젊은 층은 이들을 ‘꼰대’라고 깎아내릴지 몰라도 이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인 타운도 없었을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이런 귀중한 동료, 선배들이 한 사람씩 유명을 달리할 때면 가슴이 아려온다. 그리고  우리 이민 역사의 한 페이지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허무함을 지울 수 없다.      한국인이 존경하는 김형석 교수를 30여 년 전 여러 번 모실 기회가 있었다. 그때 그분이 하신 말씀 중에 “늙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삶의 지경(地境)이 좁아지는 것입니다”라는 대목이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지경(地境)이 좁아진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가슴에 와 닿는다. 이런 철 늦은 지혜가 생길 때쯤, 재외동포청에서 국민훈장을 준다는 통보가 온 것이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국민훈장’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삶의 지경이 좁아진 올드타이머들을 모실 기회를 만들고 싶어 모임을 가졌다.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찾아올 것이다. 올드타이머 세대는 새 싹을 돋게 하는 봄과 같은 존재다. 차세대가 아름답게 피어나게 하는 자랑스러운 세대이다. 이영송 / 한미문화교류재단 회장열린 광장 올드타이머 올드타이머 세대 부엉이 울음소리 국민훈장 석류장

2024-12-04

[열린 광장] 추수감사절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은 미국 이민 첫해 추수감사절에 증명되었다. 30년 전 9월 남편을 믿고 어린 두 아들 손을 잡고 미국에 왔다. 남편의 동료가 살던 케년컨트리 지역에 집을 얻었다. 당시 그곳은 한인이 거의 없는 시골스러운 분위기였다. 너무 조용했고 백인, 흑인 등 여러 인종을 보다 보니 모든 것이 낯설어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해님도, 달님도 한국보다 크게 보였다. 노랗게 핀 들꽃이 예뻐 덥석 만졌다가 가시 같은 것에 손가락을 찔리기도 했다. 풀조차 나를 반가워하지 않는 듯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다 온  두 아들이 참으로 안쓰러웠다. 영어도 모르는데 어떻게 학교생활에 적응할지 안타깝기만 했다.     그래도 살아야 했기에 이웃 한인들의 도움으로 가구도 사고 마켓도 가고 하면서 조금씩 적응하려 노력했다. 그러다가 미국의 최대 명절 중 하나라는 추수감사절이 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날은 터키를 구워 먹는 날이라는 것도 알았다.       이 즐거운 명절을 우리 가족, 특히 어린 두 아들도 즐기게 하고 싶었다. 이웃에 사는 한인은 터키 살은 퍽퍽하고 맛이 없어 굽지 않는다고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혼자 마켓에 갔다. 놀랍게도 터키 값은 너무 착하고 요리 방법도 까다롭지 않았다. 미국 마켓을 이리저리 돌며 그림책과 요리책을 참고하며 옥수수, 고구마, 빵 등 재료들을 준비했다. 터키는 값이 싸  큼직한 것으로 골랐다.     추수감사절 아침 신이 난 두 아들과 공부하듯 터키를 구웠다. 우리 가족의 첫 추수감사절 식탁은 미숙했고 소박했다. 그러나 식탁 중앙에 놓인 노릇노릇 잘 익은 커다란 터키는 추수감사절을 풍성하고 근사하게 하였다. 이웃분들도 초대해 감사의 인사로 즐거운 만찬을 함께 했다. 두 아들은 터키의 큰 다리뼈를 들고 “공룡 다리”라며 흥을 냈고 남편은 터키가 맛있다며 칭찬했다.     그 후 큰아들이 편하게 지내라며 터키를 주문해 준 한 해를 제외하고 해마다 터키를 구워 추수감사절을 지냈다. 우리 가족의 이민 생활은 쉽지 않았다. 영주권 문제로 오랫동안 금전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 와중에도 추수감사절의 풍성한 터키 요리는 우리 가족을 웃게 하고 어려움을 잊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해주었다. 모든 이민자 가족이 터키를 구우며 올해 추수감사절을 즐겁게 보냈으면 좋겠다.     한 지인은 추수감사절을 추석처럼 보낸다고 했다. 추수감사절에 전도 부치고 여러 나물도 해서 조상님께 제사를 드린다는 것이다. 큰딸도 가족의 이런 전통을 이해하고 지키려 한다는 자랑도 했다.       모든 한인 가정이 미국적인 삶에도 잘 적응하고, 한국의 전통적인 가족 사랑도 잘 보존하기를 소망한다.   최 유니스열린 광장 추수감사절 추수감사절 식탁 추수감사절 아침 올해 추수감사절

2024-11-14

[열린 광장] ‘파란 H’의 삶과 ‘빨간 H’의 삶

사람의 속마음처럼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 세상에 또 있을까? 부부라도 속마음을 속속들이 알고 지내는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까지 생겨났을 거다.   우리 주위에는 이른바 지도자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많다. 지도자란 거짓말보다는 참말을 해야 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나다니엘 호돈의 소설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에는 딤즈데일이란 목사가 남자 주인공이다. 젊고 아름다운 여주인공 헤스터는 나이 많은 의사 남편을 찾기 위해 보스턴에 왔지만 그를 찾지 못하고 젊은 딤즈데일 목사와 사랑에 빠져 딸까지 낳게 된다. 그러나 헤스터는 젊고 유망한 딤즈데일을 매장할 수 없어 스스로  감옥에 간다. 이후 딤즈데일은 7년이란 세월을 밤낮으로 깊이 생각하고 헤아리는 ‘주사야탁(晝思夜度)’의 삶을 살다 끝내 양심의 가책으로 죽음을 선택한다.   빅토르 위고가 쓴 소설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의 주인공 장발장은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의 감옥생활을 한다. 형기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오지만 전과자인 그를 반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좌절과 분노가 거의 터질 무렵, 미리엘 신부를 만나게 되고 은촛대를 얻게 된다. 그는 늘 이 은촛대를 지니고 다니면서 미리엘 신부의 말을 되새긴다. 그러다가 그는 인공 진주를 발견해 큰 부자가 됐고 ‘마드렌느’란 이름으로 시장까지 된다. 그런데 장발장 사건을 다뤘던 자벨 경감은 마드렌느 시장이 장발장이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고 자벨 경감은 마드렌느 시장 덕에 목숨을 건지게 된다.  자벨 경감은 장발장의 인격 앞에 고민하다 센강에 몸을 던지고 만다.   두 소설의 주인공은 H로 시작하는 대조적인 의미의 두 프랑스어 낱말과 같은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어 Honnetete(정직)과 Hypocrisie(위선)이다. 색으로 파란색은 정직을, 빨간색은 위선을 상징한다. ‘파란 H’의 삶을 살던 딤즈데일 목사는 ‘빨간 H’의 삶으로 죽음을 맞게 되고, ‘빨간 H’의 삶을 살던 장발장은 ‘파란 H’의 삶으로 훌륭한 지도자가 된다. 죄인이던 장발장은 올바른 지도자가 되었고, 거짓말만 하던 목사 딤즈데일은 불쌍한 사람이 된 것이다.     요즈음 이스라엘에 관한 목사들의 설교를 가끔 듣는다. 구약 성서에 나와 있는 대로 이집트를 떠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향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매우 자랑스럽게 설교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현실은 이런 설교가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이스라엘이란 낱말을 들을 때마다 매우 부정적인 생각이 앞선다. 성서적인 설교가 오늘의 현실과는 대조적으로 ‘빨간 H’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사람은 거짓 없이 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좋은 뜻의 거짓말이라도 하면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도자라면 ‘순청색 정직’ 을 택하는데 ‘참정절철(斬釘截鐵, 결단성 있게 일을 처리함)’ 해야 한다. 그러면 저 푸른 하늘처럼 ‘파란 H’를 가슴에 깊이 새겨 넣은 지도자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윤경중 / 목회학박사·연목회 창설위원열린 광장 주인공 장발장 여주인공 헤스터 프랑스어 낱말

2024-11-05

[열린 광장] 기회를 놓치지 말라

모처럼 다섯 손자와 손녀가 한자리에 모였다. 할아버지의 위엄을 자랑하듯 큰기침을 하고 나서, “너희들은 공부할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힘주어 말했다. 요청하지 않은 충고였다. 나는 더듬거리는 영어로 말문을 열었다.     황해도 몽금포가 고향인 할아버지는 열일곱 살 때 혼자 월남한 오리지널 탈북민이다. 일명 실향민이라고 부른다. 함경도 사람들은 떠들썩한 흥남 철수 작전으로 부산으로 피난 갔고, 황해도 사람들은 조용한 서해 철수 작전으로 군산이나 인천으로 가서 정착했다.   인천과 부평에는 미군 부대가 많아 취업이 쉬웠다. 장교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을 시작했다. 영어를 잘해야 진급할 수 있었다. ‘Swim or sink(수영하지 않으면 익사하다)’는 심정으로 공부해 통역사 시험에 합격했다. 미군 부대에서 수송부 배차원이 되었다. 하는 일은 운행증을 발부하고, 한국인 운전사를 위한 통역 서비스였다.   하루 24시간 운영하는 배차 사무실에서 두 번째 당번을 자원하여 오후 6부터 12까지 일을 했다. 밤에 일하고 낮에 공부할 기회가 왔다. 외국어대학 영어과에 입학했다. 하늘이 내려준 기회였다.   할아버지는 공부했는가. 하지 않았다. 직장에서 통역할 만큼 영어 구사력은 이미 상당한 수준이었다. 공부하지 않아도 학점을 따는 데 문제가 없었다.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필요한 출석일 수만 채우고 등교하지 않았다.   사실은 인천에서 기차 통학이란 쉽지 않았다. 밤 한 시에 퇴근하여 세, 네 시간 자고, 한 시간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여 이문동까지 한 시간 버스를 타야 한다. 항상 피로하고 잠이 모자랐다.     대학에서 중요한 것은 과외 활동이다. 외대 학보 발행, 모의 유엔 총회, 동시통역 서비스와 국제 웅변 클럽 훈련 등 영어 구사력을 국제 수준으로 향상할 기회를 모두 놓쳤다. 그때 동시통역 서비스를 연습한 친구는 나중에 국제무대에 진출했다.     할아버지가 그때 영어 공부를 제대로 했으면 좀 더 상위급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은퇴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할아버지는 국방부 민간인 직원으로 겨우 대위에 해당하는 직급으로 은퇴했다. 내가 존경하는 연방정부 고위 공무원으로 고 전신애 전 노동부 차관보, 그리고 강석희 현 조달청 서부 지역장이 있다.   너희들에게 말한다. ‘십자가 없으면 면류관 없다(No cross, no crown)’이다. 공부하는 것은 힘들다. 그러나 참아야 한다. 할아버지처럼 한 번 오판하면 그 결과는 심대하다. 마치 철로의 각도가 벌어지면 무한하게 벌어지는 것처럼.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열린 광장 기회 동시통역 서비스 외국어대학 영어과 영어 구사력

2024-11-04

[열린 광장] 아직 감동이 남은 ‘라 포엠’ LA 공연

이달 중순 우리 가족은 미주중앙일보 창간 50주년 축하 행사로 열린 팝페라 그룹 ‘라 포엠’의 공연을 보기 위해 LA를 방문했다. 집에서 LA로 향하는 길의 운전대는 아직은 방향 감각이 좋고 길눈이  밝은 내가 잡았다.     처음 찾아가는 LA다운타운의 빌딩 숲을 바라보며 복잡한 110번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브로드웨이 길로 향했다. 그런데 로컬 도로에 들어서니 물통과 밀대를 든 건장한 체격의 흑인 7명이 신호 대기 중인 자동차 운전자들에게 유리창을 닦으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오래전 문학 행사를 마치고 늦은 밤 귀가 중 LA한인타운 웨스턴 길에서 흑인 2명이 내게 차 유리창을 닦으라고 강요하던 무서운 기억이 떠올랐다.   다행히 신호등은 곧 바뀌었고 나는 ‘사양한다’는 신호를 보내며 아무일 없이 그곳을 지날 수 있었다. 최근 몇 년 사이 LA를 비롯한 미국 대도시에 홈리스가 부쩍 늘었다는 소식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이 나라가 어떻게 될지 한숨만 나오는 요즘이다.     공연 시간 훨씬 전에 도착한 덕에 공연장 근처에 차를 주차하고 들어갈 수 있었다. 고층 빌딩이 어찌나 많은지 넓은 브로드웨이 길이 마치 골목처럼 보였다.     공연장은 너무나 우아하고 정교한 고딕 양식의 건축물로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공연장은 1919년 찰리 채플린 등이 만들었다는 유명한 ‘유나이티드(The United) 극장’.  아직 유럽 여행은 못 해 봤지만, 유럽의 유명한 극장 같았다. 공연장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사진을 찍으면서도 행복했다.     ‘라 포엠(La Poem)’은 한국의 ‘일디보’ 같은 성악도 네 사람이 결성한 팝페라 그룹. LA에 오기 전 워싱턴DC와 댈러스에서 공연을 마쳐 얼마나 피곤했을까마는, 그들이 열창하는 팝페라는 고풍스러운 극장을 우렁차게 휘감았다. 극장 직원들도 홀에 서 있던 바텐더들도 모두 놀라는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왠지 나도 어깨가 으쓱해졌다.     스피커 음향도 정말 최고였다. ‘라 포엠’ 멤버들의 의상 또한 요란하거나 천박하지 않고, 세련되고 멋졌다. 한국어와 영어, 또 외국어로 부르는 노래들도 지루하지 않았다. 곡마다 자연스러운 대화로 소개하는 ‘라 포엠’의 공연은 최고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이 멀어 우리 가족은 인근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 시간 역시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는 의미 있는 것이었다. 이 행사를 완벽하게 준비한 주최 측과 무대 뒤에서 묵묵히 수고한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최미자 / 수필가열린 광장 감동 공연 공연장 근처 공연 시간 la 공연

2024-10-30

[열린 광장] 달라진 레몬법, 알아야 이긴다

최근 개빈 뉴섬 주지사가 서명한 캘리포니아 레몬법 개정안(AB 1755)에는 소비자들이 꼭 알고 있어야 할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법은 2025년 4월 1일부터 시행 예정으로 소비자들은 더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게 한 것이 골자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절차와 조건을 잘 이해하고 준비하는 것이 필수다.   ‘AB 1755’에 따르면 소비자가 차량 관련 문제를 제기했을 때 해당 자동차 제조업체는 30일 이내에 이에 응답해야 한다. 또한 추가로 30일 이내에 환불 또는 교환 절차를 완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기존 절차를 개선해 소비자들이 문제를 빨리 해결할 수 있도록 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인 변화다. 예를 들어, 차량 구매 후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빨라진 절차 덕분에 수리 기록을 근거로 신속한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소비자에게 유리한 일이다. 특히 차량이 생계 수단이거나 긴급한 해결이 필요한 소비자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개정법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반드시 새로운 절차와 조건을 숙지하고 따라야 한다. 우선, 소비자는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반드시 제조업체에 서면으로 문제를 통지해야 한다. 서명 통보는 제조업체 웹사이트에 명시된 이메일 주소나 차량 매뉴얼에 기재된 주소로 보내야 한다. 이 과정과 절차를 제대로 따르지 않으면 레몬법의 보호를 받기 어려워질 수 있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은 기존보다 법적 절차를 더 신중히 따라야 하는 부담이 생길 수 있다.   또한, 소송 가능 기간도 변경됐다. 비교적 유연했던 소송 기한이 이제는 차량의 ‘익스프레스 워런티’ 기간에 1년이 추가된 기간 내로 제한된다. 예를 들어, 2025년에 3년 워런티가 있는 차량을 구매했다면, 최대 소송 가능 기간은 2029년까지다. 이 기간을 초과하면 소송이 불가능해지므로, 소비자들은 워런티 조건과 소송 기한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이밖에 소송 제기 시점에 반드시 차량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도 달라진 내용이다. 과거에는 차량 소유 여부와 관계없이 수리 기록만으로도 소송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차량을 소유한 상태에서만 소송을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소비자에게 추가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2017~2020년 사이 생산된 차량을 소유하고 있고, 딜러의 수리 기록을 가진 소비자라면 지금의 기회를 놓치지 말 것을 권장한다. 즉, 2025년 4월 이전에 서둘러 소송을 제기하여 기존의 레몬법 혜택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 시점을 놓치면 새로운 법의 적용을 받게 돼 그때는 소비자 보호의 유효 기간 범위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AB 1755’는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려는 긍정적인 목적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더 많은 책임과 절차적 요구를 요구한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고, 자신의 권리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소비자들은 레몬법 관련 절차를 정확히 숙지하고, 법적 문제 해결이 필요할 경우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최선의 결과를 얻기 바란다. 최미수 / 변호사열린 광장 레몬법 캘리포니아 레몬법 소비자 보호 레몬법 혜택

2024-10-28

[열린 광장] 월드시리즈와 의료 사고

1981년 10월24일, LA 다저스와 뉴욕 양키스 간의 월드시리즈 TV 중계를 보고 있을 때 중환자실에서 긴급 상황이 발생했다. 양키스의 강타자 레지 잭슨이 수비도중 강한 햇빛 탓에 공을 놓쳐 다저스 팬들이 즐거워하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중환자실에선 의료 사고가 발생했다. 담당자인 신경내과 전문의의 잘못이었지만 치료에 관여했던 다른 전문의 4명도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거액의 배상금을 지불한 사고였다.    대형 의료 사고가 발생하면 주치의뿐 아니라 치료에 참여한 다른 의사들에게도 책임을 묻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억울함을 느끼는 의사도 있지만 피해자에게 최대의 보상을 해주기 위한 의도도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 흉곽내과의로 치료에 참여했던 나도 꼼짝없이 몇십만 달러를 보상해야 할 처지였다. 그런데 환자 부모의 특별한 배려로 나는 소송 대상에서 제외됐다. 대신 환자 측 변호사로부터 시간당 1000달러를 줄 테니 법정 증인을 해달라는 권유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솔직하게 설명했다. 법원에서 소환장이 오면 어쩔 수 없이 증인대에 서야 하겠지만 같은 지역에서 진료를 하는 동료 의사들에게 불리한 증언은 할 수 없다며 이해를 구했다. 다행히 환자 측 변호사는 나의 요구를 들어줬다.     이 사건은 두 가지 측면에서 내게 큰 전환점이 됐다. 첫째, 전문 치료 분야를 바꾼 것이다. 긴박하게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흉곽내과 대신 가정 주치의 역할을 하는 일반 내과의로 진료를 시작했다. 1982년의 일이다.     다른 하나는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인 미국에도 돈에 연연하지 않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확신이었다. 그 당시 환자 가족은 나도 소송에 포함했으면 보상금으로 몇십만 달러를 더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소송 대상에서 나를 제외했다. 평소 환자에게 친절하게 정성을 다한 결과의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그 후로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됐다.     의사를 지망하는 후배 의학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환자 치료를 비롯해 모든 일에 정성과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큰 복이 온다는 사실이다.     이번 다저스와 양키스의 월드시리즈는 그래서 감회가 남다르다. “레츠 고 다저스(Lets go Dodgers!)”  최청원 / 내과 의사열린 광장 월드시리즈 의료 월드시리즈 tv 환자 치료 의료 사고

2024-10-27

[열린 광장] ‘출필고, 반필면’ (出必告, 反必面)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어디 있어요?” 아내의 날카로운 목소리다. 내가 집을 나온 지 거의 두 시간이 되었다. 쇼핑 나온 사람은 시간이 빨리 가고,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시간이 더디 가게 마련이다. 아내는 요즘 내가 운전하다 사고라도 내지 않을까 걱정이다.   정신없이 쇼핑하다 깜빡 잊고 아내에게 전화하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할아버지로부터 ‘떠날 때는 반드시 말하고, 돌아오면 반드시 보고하라(出必告, 反必面)’는 것을 귀가 따갑도록 교육받은 사람이…. 요즘은 휴대전화 시대니 늦어지면 중간보고도 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출필고, 반필면’과 중간보고를 부탁했다. 두 딸은 말을 잘 들었다. 어디를 다녀오면 재미있게 설명해 준다. 부모들은 ‘다녀왔습니다’라는 말 이외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한다. 그런데 아들은 나를 닮아 말이 별로 없는 편이었다.  아들은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대학에 다녔다. 언젠가 여름 방학에 집에 온다고 했다. 친구 차에 동승하고 아침 9시에 출발한다는 전화가 왔다. 아무리 늦어도 오후 5시쯤에는 오렌지카운티에 도착해야 했다. 그런데 밤 11시가 되어도 오지 않았다. 분명 큰 사고가 났다고 생각했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안절부절못했다.   가주 고속도로 순찰대 (CHP) 새크라멘토 본부에 전화해 사정 이야기를 했다. 다행히 그날 5번 도로에서 대형 자동차사고는 없었단다. 자정이 지나서 아들이 도착했다. 5번 도로 대신 해안 도로를 따라 내려오느라 늦었다는 것이다. 공중전화로 늦는다고 알려라도 줄 것이지….   몇 년 후 그 아들이 하와이 큰 섬으로 신혼여행을 갔다. 와이미아 호텔에 도착하는 대로 전화를 한다고 했는데, 아무 소식이 없었다. 히로 공항에 내려서 와이미아로 가던 도중 차 사고가 있었나, 도로 옆 절벽으로 굴러떨어졌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히로 경찰서로 전화했다. 히로와 와이미아 사이에서 한 건의 차 사고도 없었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당신 아들과 신부의 행방을 찾는 데 성공했습니다. 방금 와이미아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중간에 몇 군데 들려서 사진을 찍느라고 늦었다고. 내가 미리 겁을 먹었던 것이다.   요즘은 아들이 한 주에 한 번은 안부 전화를 하거나 집으로 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대화를 나눈다, 그도 자식을 낳아 키워보니 무슨 깨달음이 있었나 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부모 자식, 그리고 부부간에도 ‘출필고, 반필면’은 지켜야 할 예의범절이다. 늦으면 늦는다고 중간보고도 해야 한다.     여러분 가정에서는 이 예의범절이 잘 지켜지고 있습니까?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열린 광장 휴대전화 시대 안부 전화 당신 아들

2024-10-21

[열린 광장] 고 김학송 선생 ‘헌정음악회’ 열었으면

대학시절 경춘선 완행열차에 기타 하나 둘러메고 친구들과 무작정 찾아갔던 강촌에 노래비 하나가 세워져 있어 소개해 드린다. 2005년 춘천시가 가로 4m, 세로 3.5m의 화강석으로 만든 노래비에는 다음과 같은 노랫말이 새겨져 있다.   ‘날이 새면 물새들이 시름없이 날∼으는/꽃피고 새가 우는 논밭에 묻혀서/씨 뿌려 가꾸면서 땀을 흘리고/냇가에 늘어진 버드나무 아래서/조용히 살고파라 강촌에 살고 싶네’     설강 김성휘 선생이 목가적인 북한강 수변 강촌천 주변의 풍경에 반해 만들었다는 가요 ‘강촌에 살고 싶네’ 1절 가사이다.   이 가요는 국민가수 나훈아가 1971년에 발표하여 한시대를 풍미한 ‘불후의 명곡’이 되었는데 이 노래를 작곡한 분이 LA의 원로 음악인 고 김학송 선생이다. 그는 1960~80년대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작곡가, 작사가, 편곡가, 피아니스트, 악단장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며 수많은 명곡을 작곡했다. 그의 노래는 나훈아, 조용필, 조영남, 이상열, 최헌, 태진아, 송대관, 샌디김, 이미자, 김상희, 조미미, 방주연, 김부자 등 당대 인기 가수들에 의해 발표됐다. 그는 스타가수를 만드는 대 작곡가로 명성을 날린 음악인이었다.   선생님은 1981년 미국에 이민 와 90년대 초부터 LA 한인 사회에서 이인섭 선생과 함께 가요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꾸준히 후배 음악인 양성에 주력했다. 그런 와중에 한인 사회를 위해 의미 있는 곡을 여러 편 발표했다. 2003년 미주 한인이민 100주년을 기념하는 곡 ‘백년의 함성’ (이인섭 작사/김학송 작곡)을 비롯해 4·29 LA 폭동을 겪으며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750만 한인 디아스포라를 하나로 묶어준 노래 ‘한마음으로’ (이인섭 작사/김학송 작곡)를 만들었다. 또 역사적인 로즈퍼레이드 한인 꽃차 참가를 기념하는 꽃차 로고송 ‘하늘 높이 꽃차 타고’ (윤수경 작사/김학송 작곡)를 만들어 홍보에 크게 기여한 한인 사회의 소중한 문화예술인이었다.     1925년생인 선생님은 2016년 6월 별세했다. 내년은 선생님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이 뜻깊은 해를 맞이하여 LA의 후배 음악인들이 중심이 되어 그의 음악인생 70년을 돌아보며 존경과 사랑의 마음으로 ‘헌정음악회’를 개최해 보자고 제안한다.     마침 이인섭 선생이 작사하고 선생님이 곡을 만드신 미발표 유작들이 여러 편 있어 내년 ‘헌정음악회’를 통해 발표된다면 더 뜻있는 무대가 되리라 생각한다. 이광진 / 문화기획사 에이콤 대표열린 광장 헌정음악회 김학송 김학송 작곡 이인섭 선생 김성휘 선생

2024-10-20

[열린 광장] ‘그만’을 모르는 남자

웬일인가? 지난주 110과 120을 밑돌던 공복혈당이 140과 150으로 고공행진하고 있다. 주범(?)은 수박이라고 생각했다.     파머스마켓 같은 곳에서 싱싱한 수박 세 통을 샀다. 깍두기처럼 잘라서 냉장고에 넣고 물 마시듯 먹었다. 단물이 철철 흐르는 시원한 수박. 앉은 자리에서 한참 집어먹어 배가 불러야 직성이 풀린다. 아내는 몇 개만 먹고는 더 먹지 않는다.   나는 ‘그만’을 모르는 남자다. 알고 보니 당뇨 상승의 진짜 주범은 바로 나 자신이었던 것이다.   내가 성장한 황해도 장산곶은 가뭄과 홍수로 흉년이 자주 찾아왔다. 보릿고개를 넘기려면 저녁에는 강냉이 또는 수수죽을 먹었다. 얼굴이 비치는 멀건 죽을 두, 세 사발씩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배가 늘어났다. 늘어난 배를 채우려고 애썼다. 어머니는 자기 몫을 먹지 않고 나에게 주었다. 흉년에 어른들은 굶어 죽고 아이들은 배가 터져 죽는다는 말이 있다.     나는 배가 불러야 수저를 놓는 습성이 생겼다. 그 습성을 버리지 못해 영양 과잉으로 배가 나오기 시작했다. 젊어서는 앉아서 냉면 두 그릇을 먹어도 아무 탈이 없었다.   그러니 과거 식생활을 되돌아보면 당뇨가 올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온종일 컴퓨터와 씨름하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식당으로 달려갔다. 집에서 가져온 세 가지나물과 버섯 복음, 그리고 흰쌀밥을 데워서 고추장을 넣고 비벼 먹었다. 음료수는 레귤러 코카콜라 한 캔, 그리고 초콜릿 바 한 개로 입가심했다. 콘 칩 몇 개로 점심을 때우는 우리 매니저는 지나가면서, “You are having a fine feast everyday(당신은 매일 훌륭한 만찬을 먹네요)” 라고 칭찬인지, 비웃는지 모를 말을 하곤 했다.     초콜릿 바는 설탕 덩어리다. 한국의 미군 부대에서 일할 때 같이 일하는 미군 병사가 피엑스에서 사다 준 초콜릿 바가 어찌나 맛있었던지. 가끔 얻어먹는 것은 코끼리가 비스킷 먹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초콜릿 바를  실컷 먹는 것이 소원이었다. 이민 와서 그 소원은 성취했으나, 대가로 당뇨가 찾아왔다.   나는 30년 차 당뇨 환자다. 하루에 세 번 당뇨약을 먹는다. 인슐린 투입 직전이다. 그래도 슈거 프리 초콜릿과 캔디,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즐기고 있다. 슈거 프리도 대체 설탕이 들어있다고 한다.     냉장고의 수박을 다 먹으면 더는 사오지 않으려고 한다. 실컷 먹지 못한다면 아예 먹지 않겠다는 각오를 해 본다.  ‘All or nothing’이다. 남은 것은 식욕뿐인데, 인슐린이 무서워 그 시원한 수박도 마음대로 먹지 못한다.   이제 무슨 재미로 사나요?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열린 광장 남자 당뇨 상승 슈거 프리 인슐린 투입

2024-10-13

[열린 광장] ‘영적사전치료지시서’(SCAD)란 무엇인가

임상목회자(Clinical Pastor)로서 ‘영적사전치료지시서(Spiritual Care Advance Directive)’라는 것을 자주 사용한다. 이는 환자의 ‘영적 돌봄(Spiritual Care)’에 대한 필요성을 담당 의료팀에 알리는 양식이다.       전국적으로 사용되는 ‘의료사전치료지시서(AHCD)’가 있는데 이는 의료상의 선택을 다룬다. 캘리포니아 주에서 사용되는 ‘의료사전치료지시서{California Advance Health Care Directive}'는 2000년 7월 1일부터 AB 891 법에 의하여 공식 양식으로 병용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의 양식은, 환자가 의료결정위임자(DPOA)를 선임할 때 지정해 둔 가족이나 친지의 우선 서열이 없는 것이 특이하다.     아무튼 '영적사전치료지시서'의 배경을 알아두면 유익하다. 이는 환자 각자의 삶의 여정과 영적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이 다르다는 데서 시작한다. 환자들은 투병과 회복에 대한 관점, 그리고  삶의 단계에서 가지는 목표도 다양하다. 이에 따라 투병 목표를 표현하고 치료 과정에서 자신의 영적 돌봄 선택을 담당 의료팀에 미리 알리기 위한 양식이다.     이 양식의 작성에는 열네 가지 주제가 제시된다. 이에는 삶의 존엄성과 관련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내용은 무엇인가, 투병과 아픔의 의미와 소망은 무엇인가, 완전한 회복이 가능하지 않다면 당신에게 의미 있는 회복의 정도는 어떤 것인가, 삶의 시간 가운데 무엇보다 감사한 순간이 있었다면 무엇인가 등이다.     '영적사전치료지시서'는 참으로 소중하다. 환자 각자에게 심적·영적 가치관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병원 의료팀(IDT)의 특성상 환자 개인의 삶의 품위까지 돌보는데 시간을 할애하기는 어렵다.   이 SCAD양식은, 병원뿐 아니라 호스피스 케어, 팰리어티브 케어, SNF 와 같은 인가된 헬스케어 기관에서도 사용된다. 다만 이 양식은 환자의 삶의 질(QOL)을 향상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지만 동시에 의료계의 스탠다드에 분명하게 상반되는 예외적 요청은 재작성을 요구할 수 있다. (CPC 4735)   내일(12일),  정신의학전문의 수잔 정 박사, 그리고 다수의 의료계 관계자자 공동으로 주관하는 '커뮤니티 헬스 페어(Community Health Fair)' 가 오렌지카운티 지역에서 열린다. 이 행사에 '영적사전치료지시서'에 대한 강의 시간도 마련되어 있다. '영혼의 존엄성'에 관한 설명을 듣고 직접 작성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김효남 / HCMA 디렉터·미주장신 교수열린 광장 영적사전치료지시 scad 투병과 회복 헬스케어 기관 환자 각자

2024-10-10

[열린 광장] 안중근 의사의 만장

더 시간이 가기 전에 어릴적 들었던 안중근 의사의 만장(輓章)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아야겠다. ‘효갈모생무적거(曉蝎謀生無跡去), 석문영사유성래(夕蚊寧死有聲來) - 새벽 빈대는 살기 위하여 자취를 감추지만, 저녁 모기는 죽을지언정 소리를 내며 날아온다.’  어릴 적 할아버지가 안중근 의사의 만장이라며 알려주신 내용이다. 만장이란 고인의 업적과 공덕을 치하하고 슬퍼하는 짧은 글을 비단이나 종이 쓴 깃발을 말한다.     나는 열 살 때부터 열흘에 한 번 정도 할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유교적인 가정교육을 받았다. 사실은 일방적인 훈시였다. 할아버지는 늘 “안중근 의사처럼 불굴의 의지를 갖고 목표를 달성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의 만장을 시조처럼 목청 높여 읊고 훈시를 끝냈다. 그의 왕방울 같은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좀처럼 눈물을 보이는 분이 아니었다. 그런 분이 눈물을 흘리니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져 같이 눈물을 흘렸다.       할아버지와 안중근 의사는 같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황해도 해주시 광석동(廣石洞), 일명 ‘광석 개’다. 할아버지보다 두 살이 많은 안중근 의사는 일곱 살 때 황해도 신천으로 가족과 함께 이사했다.     이 칠언시 만장은 많은 의문점을 갖게 한다.  만장을 만들었다면 안중근 의사가 일제에 사형을 당한 후 시신이 없는 장례식, 혹은 추도식이라도 치렀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주최자는 누구였을까? 장소는, 해주, 신천, 연해주, 또는 상하이, 어디에서 열렸을까? 누가 빈 상여를 메고 가두 행렬을 했을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온다. 하지만 인터넷 백과사전을 찾아봐도 안중근 의사의 장례식이나 만장에 대한 언급은 없다.   각설하고 나는 지난해 안중근 기념사업회에 만장의 칠언시를 유물 전시관에 전시할 수 있는지 문의하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할아버지에게서 들은 구전(口傳)의 글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기발한 회답이 왔다. 그 때 사용했던 만장, 그 유물(遺物)을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래서 올해 다시 용산 대통령 민원실에 이 만장의 칠언시를 안중근 기념관에 무형유산으로 전시해달라고 민원을 제출했다. 역시 비슷한 내용의 다음과 같은 회답을  받았다. ‘귀하께서 언급하신 만장 및 칠언시는 안중근 의사와 관련된 의미 있는 기억의 일부분으로 볼 수 있으나 무형유산의 범주에는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점을 양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올해 구순이다. 총성과 함께 ‘꼬레아 우라(대한민국 만세)’라는 메아리가 울리는 듯한 이 만장은 돌이 물속으로 가라앉듯 나와 함께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독자 여러분과 특히 미주 안중근 의사 숭모회 회원들은 이 칠언시를 메모하여 보존하기를 바란다.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열린 광장 안중근 의사 안중근 의사 안중근 기념관 미주 안중근

2024-10-02

[열린 광장] 삶 속의 야구

미국에서는 야구, 농구, 아이스하키, 풋볼을 4대 프로 스포츠라고 부른다. 매년 정규 시즌에 야구는 팀당 162게임, 농구와 아이스하키는 82게임, 풋볼은 17게임씩을 한다. 그중 가장 많은 경기를 하는 야구는 특별히 ‘과거의 시간(national past time)’이라고 한다.     50년 전 미국에 와 고달픈 인턴, 레지던트, 펠로우 생활을 할 때 집에 돌아오면 매일 야구 중계를 하는 TV로 눈길이 가고는 했다. 야구 중계 시청은 그 당시 유일한 삶의 활력소였다.   수련의 과정 후 내과개업의로 지내면서도 야구는 나의 삶 속에 녹아들었다. 야구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야구에 대한 모든 것을 열심히 익히게 되었다. 그 덕에 한동안 한인 라디오 방송의 LA다저스 경기 중계 해설을 맡기도 했다.     메이저리그 선수가 되는 길은 어렵다. 동네 빈터(sand lot)에서 공놀이하던 소년들이 리틀리그에서 시작해 고교·대학의 야구선수가 되고 그중 유망 선수들이 마이너리그에 뽑혀 수년간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되고 그중 또 극소수만이 메이저리그 선수가 되는 것이다.       각 팀은 매년 162경기를 치르고 그중 출중한 두 팀이 모든 야구선수의 꿈인 월드시리즈에 진출하게 된다. 야구 선수가 돼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은 것은 우연한 행운인 복권 당첨과 다르다.  어린 시절부터 꿈을 향한 치열한 경쟁과 노력을 통해 이루어낸 결과다. 그들은 박수를 받을만한 선수들이다.     올해 메이저리그 최고 화제는 LA다저스 선수인 쇼헤이 오타니의 ‘50홈런-50도루’ 기록이다. 이는 미국 프로야구 135년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그의 재능과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이 기록은 아마 앞으로 깨기 힘들 것이다.  일본 출신의 아시아계 선수가 거둔 성과라 더욱 뿌듯하고 자랑스러움이 가슴에 와 닿는다.     전 예일대 총장으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까지 역임한 고 바트 지오마티(유명 배우인 폴 지오마티의 부친)는 “야구에는 우리의 가슴에 와 닿는 그 무엇이 있다. 약간 쌀쌀한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  월드시리즈가 끝나면 우리의 가슴 속에는 늦은 가을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는 오타니 선수가 대기록을 세운 경기를 지켜본 추억이 가슴 속에 남아 있게 될 것 같다.     조금 있으면 올해 월드시리즈가 열리게 된다. 어떤 팀들이 꿈의 무대에서 멋진 경기를 보여줄지 벌써 기대가 된다.        최청원 / 내과의사열린 광장 야구 야구 선수 야구 중계 야구 농구

2024-09-24

[열린 광장] 두고두고 후회스러운 일

칠십 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후회스러운 일이 두 가지 있다. 50세가 넘을 때 까지 담배를 피운 일과 술을 많이 마신 일이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서 뿔난다’고 했던가. 사춘기 때부터 어른들 몰래 피우기 시작한 담배는 한창 젊었을 때는 하루에 세 갑 정도 피운 골초였다. 술 마실 때 안주는 없어도 담배는 꼭 있어야 했으니 말이다. 한국에서 20년 넘게 영업직에서 근무했는데 고객 접대 명목으로 술 마시는 일이 너무 잦았다. 일 년 중 손가락 꼽을 정도의 날을 빼고는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데 젊은 시절에는 흡연과 음주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마냥 건강할 줄 만 알았다. 멋모르고 산 것이었다.     15년 전 우연한 기회에 ‘흡연과 음주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의학 잡지를 접하게 되었다. 백해무익한 담배는 건강에 매우 해로운 영향을 끼친단다. 흡연은 폐 질환 위험을 증가시키고 혈관을 손상해 동맥 경화를 촉진하는 등 심장 질환 위험을 높여 평균 수명을 단축한다고 했다. 담배 한 개비에는 수십 가지의 발암물질이 들어 있다고 한다. 또한 과도한 음주는 간을 손상할 수 있고 간염, 간경화, 간암 등의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고 했다. 장기간의 음주는 신경계에 이상을 초래하여 기억력을 저하한다는 경고성 메시지에 ‘아차’ 싶었다.   굳은 결심으로 담배와 술을 한꺼번에 끊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60세가 거의 다 되어 갈 때부터 건강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혈압과 당뇨병이 생긴 것이다. 흡연 때문에 혈관이 좁아져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못해 손발이 저리기 시작했고, 당뇨 합병증으로 시력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흡연으로 인하여 왼쪽 폐에 종양이 생겨 수술을 받았는데 그 종양이 너무 컸기에 갈비뼈 한 개를 절단한 후 제거할 수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폐암은 아니고 양성 종양으로 판명되었다.     지금은 담배와 술을 모두 끊고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부를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라고 하니 실패한 인생을 산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모두 죽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누가 먼저 가고 누가 조금 늦게 가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도 그 길을 피할 수는 없다. 아프면서 오래 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죽는 날까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산다면 이 또한 하늘이 내려 준 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나처럼 우둔한 사람이 어디에 또 있을까. 건강에 해롭다는 담배와 술을 장기간 즐기며 살았으니 어찌 몸이 망가지지 않으리오. 흡연과 음주를 즐긴 내 인생이 두고두고 후회스럽다. 내 마지막 바람이라면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 안 주고 삶을 마감하는 것이다. 이진용 / 수필가열린 광장 후회 흡연 때문 양성 종양 심장 질환

2024-09-18

[열린 광장] 용양호박(龍攘虎搏)의 세상

아주 시끄럽던 8월이 지나갔다. 2024년 파리올림픽 때문에도 시끄러웠고 폭우와 광풍 때문에도 시끄러웠다. 미국에선 대선 후보가 바뀌는 일 때문에도 또한 시끄러웠다.   8월이 지나고 9월엔 조용할 줄 알았는데 첫 주부터 노동절 연휴로 북적였다. 역사적으로 9월을 살펴보면 첫날에 진짜 시끄러운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1939년 9월 1일 나치의 독일 군대가 폴란드를 침공,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2차 세계대전은 용양호박(龍攘虎搏)의 참상이었다. 용양호박은 비슷한 상대끼리 서로 맹렬히 다투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용은 옛날 중국 사람들이 생각한 ‘신령한 짐승’이다. 머리에 뿔이 있고 몸통은 뱀과 같으며 네 다리에 날카로운 발톱이 있다. 그리고 춘분에는 하늘로 올라가고 추분에는 연못에 잠긴다는 짐승이다. 그래서 ‘용’이라는 글자는 신령한 뜻을 지녀 우수하고 강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나 사물을 일컫는 데 쓰이는 용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좋든 싫든 용양호박의 싸움터에서 삶을 시작하게 된다. 부모와 자식 간에, 형제자매끼리도 갈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대통령 선거전이 용양호박의 양상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문제는 한국과의 관계가 슬기롭게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또 북한과의 접촉이 용이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있는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도 생각해야만 한다.    ‘용’이라는 글자는 강하거나 슬기로운 사람뿐만 아니라 특이한 사건을 기술하는 데에도 사용된다. 그 좋은 보기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들 수 있다. 용비어천가는 한글로 지은 최초의 문헌이다. 용비어천가는 세종대왕이 1445년(세종 27년)에 권지, 안지, 정인지에게 명하여 조선 건국의 위업과 선대 육조의 덕을 칭송한 서사시다.  한글로 된 서사시의 이름이 한문으로 된 것이 매우 이채롭다.   ‘용’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낱말은 수없이 많다. 심지어 맛이 썩 좋은 음식이란 뜻의 용미봉탕(龍味鳳湯)이란 말도 있다.      아무튼 한문 ‘용’자가 주는 교훈은 참으로 놀랍다. 한국에서 아직 한자의 영향력은 크다. 모든 사람의 성(姓)을 비롯해 중요한 문서에도 한자가 많이 사용된다. 한자는 글자마다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용반호거(龍盤虎距, 산세가 웅장하고 경치가 아름다움)의 환경에 건국된 미국은 1787년 9월 17일 헌법이 반포됐다. 용양호박의 싸움터에서 승리한 결과다. 올해 민족의 명절인 한가위가 미국의 헌법기념일과 일치하니 이 또한 묘경(妙境)이 아닐 수 없다. 윤경중 / 목회학박사·연목회 창설위원열린 광장 용양호박 대통령 선거전 조선 건국 대선 후보

2024-09-16

[열린 광장] 대선판에 벌어진 지각 변동

미국 대선이 11월 대단원의 막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민주당 대선 후보가 바이든 대통령에서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으로 바뀐 이후 대선판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듯하다. 공화당 대선후보 트럼프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패배를 인정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부동산 재벌가의 차남으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물려받은 재산과 사업수완으로 뉴욕에서 부동산 개발과 호텔업 등으로 성공한 사업가다. 그는 재력과 인지도를 바탕으로 2016년 제45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사업가에서 정치인으로의 변신은 전 세계인의 주목 대상이 됐었다.     트럼프의 선거 구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소위 ‘MAGA’였다. 그러나 과거 그의 재임 기간에 미국이 다시 위대하게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생각이다. 특히 폭도들의 연방의회 의사당 난동사태를 방임한 것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것이다.     그는 재선에 실패했고, 미국 역대 대통령 평가에서 최하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퇴임 후 4건의 형사소송과 2건의 민사소송에 연루되어 재판까지 진행 중이다. 이런 불리한 여건에도 그는 8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47대 대선에 도전하고 있다.     그는 자신보다 겨우 네살 많은 바이든 대통령을 고령과 인지능력 저하를 이유로 공세를 펼쳤다. 그러다 지난 7월13일 펜실베이니아주의 선거 유세장에서 암살 기도 테러를 당했다.  다행히 총알은 그의 귓가에 상처를 냈을 뿐, 그는 불사조와 같이 다시 일어섰다. 죽음을 피한 그에게 지지자들은 열광했고 대선 후보로서 그의 입지는 더욱 강화되는 듯했다. 총알이 피해간 것은 하나님의 섭리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며칠 후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직 사퇴 의사를 밝히며 후보로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 지지 입장을 밝혔다. 이때부터 대선판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해리스의 등장은 마치 혜성과 같았다. 혼혈 여성이라는 약점에 존재감 없는 부통령으로서 세인의 관심밖에 있었던 해리스 부통령은 후보 지명을 받은 후 민주당과 지지자들로부터 열성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트럼프와 비교해 미래 지향적이고, 긍정적이며, 사회 정의와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부자보다는 중산층을 지원하며, 여성 인권을 강조하는 것 등이 이유다. 이로 인해 트럼프 선거 진영은 흔들리는 모습이다.  바이든 공략에는 유효했던 트럼프의 선거 전략이 해리스에게는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총알도 피해간 트럼프가 여성 후보에게 고전하는 꼴이 됐다. 여성과 소송에 휘말린 그의 행위에 대한 업보가 아닐까?     대선은 아직 60여 일이 남았다.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겠지만 풍기는 냄새가 바뀐 것만은 확실하다.   권영무 / 샌디에이고 에이스 대표열린 광장 대선판 지각 이후 대선판 지각 변동 공화당 대선후보

2024-09-03

[열린 광장] 루브르 박물관의 비극

한국 어린이들이 자랄 때 가장 많이 듣는 외국어가 프랑스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어머니들이 젖먹이에게 두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쥐엄쥐엄” 하는 소리가 프랑스어 “쥐엠 쥐엠 (J' aime, J’ aime,  나는 사랑한다)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2024년 하계 올림픽이 열린 파리에는 명소가 많다. 오륜기가 휘황찬란하게 빛났던 에펠탑을 비롯해 샹젤리제의 밤거리를 아름답게 수놓은 개선문도 있다. 이들 못지않게 인기를 끄는 곳이 루브르 박물관이다. 루브르 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예술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센 강 주변 약 40에이커의 부지에 세워졌다.       루브르 박물관은 원래 1204년 필립 2세 때 왕궁으로 지어졌다. 그 뒤 1541년 필립 5세 때 개축되었는데 나폴레옹 1세에 의해 국립박물관으로 명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에는 수많은 유명 미술작품이 보관되어 있다. 그 가운데 이탈리아와 네덜란드의 이름난 미술가들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비롯해 렘브란트, 반 다이크, 라파엘 등의 작품도 있다.       루브르가 아름답고 이름난 곳이지만, 역사를 더듬어 올라가 보면 매우 슬픈 이야기가 스며있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도 파리 유학 전에는 432년 전 8월에 있었던 루브르에 얽힌 이야기를 몰랐으니까….   프랑스 국민은 95%가 가톨릭 신자다. 이는 신교가 발을 붙이지 못했음을 의미하며, 아울러 신교 신자가 많은 박해를 받았으리란 암시를 주고 있디.  프랑스에서는 구교와 신교가 큰 싸움을 여러 차례 했다. 16세기 당시 가톨릭의 귀즈 집안과 신교의 샤띠용 집안이 큰 싸움을 벌였는데, 이때 샤띠용 가의 꼴린니 장군이 양측의 화해를 시도했다. 그는 신교의 나봐르 앙리와 구교의 샤르르 9세의 누이 마가리뜨와 결혼을 주선했다. 드디어 1572년 8월 18일 결혼식 참석을 위해 양가의 귀족들이 파리에 모였다. 그런데 이 결혼식이 두 집안의 큰 싸움으로 번지는 비극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11살 밖에 안된 샤르르 9세의 섭정을 맡은 까트린느가 꼴린니 장군의 영향력을 두려워해 그를 암살하려다 실패했다.     그 후 다시 암살 계획을 세웠는데 바로 성 바텔르미 축제일인 1572년 8월 24일 꼴린니 장군을 암살하고 이 축제에 모인 신교도 약 8000명도 학살했다. 그 가운데 약 3000명은 루브르 궁에서 떼죽음을 당했다. 바로 ‘성 바텔르미 대학살사건 (Le Massacre de la Saint-Barthelemy)’이다.   찬란한 빛 뒤에는 어둡고 슬펐던 옛 이야기들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지금도 많은 관광객이 루브르 박물관을 찾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루브르의 마룻바닥에 수많은 신교 기독교인들이 흘린 핏자국이 서려있음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윤경중 / 목회학박사·연목회 창설위원열린 광장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신교 신자 신교 기독교인들

2024-09-02

[열린 광장] 웃으며 삽시다

‘일소일소(一笑一少)’,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진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한 여성을 알기 전까지는 이 말에 의문을 갖고 있었다.     체육관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아무 때나 웃는 모습에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였다. 알고 보니 그녀는 미국에 이민 와 60대 초반까지 LA 다운타운의 봉제 공장에서 일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이른 아침 출근길 횡단 보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녀는 정신을 잃었고 가해 차량은 도주해 버렸다. 입원 기간이 3개월이 넘을 정도로 중상이었다. 나중에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중풍까지 와 한쪽 다리를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퇴원 날, 한인 의사가 “가장 좋은 약은 마음의 즐거움에 있다. 억지로라도 웃으며 살아 보라”고 권유하더란다. 그녀는 “오늘부터 웃으며 즐겁게 살아야지” 굳게 다짐하고 웃으며 생활했더니 통증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건강도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건강을 되찾아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생활한다. 그녀는 웃음에 병을 고치는 치료제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본인에게는 웃음이 가장 좋은 처방약이었다고 강조한다.   노만 카슨스는 UCLA에서 웃음과 건강과의 관계를 연구한 학자다.  그는 “웃음은 방탄조끼다. 어떤 병균도 웃는 사람에게는 들어갈 수 없다”고 주장할 정도다. 웃음은 스트레스와 불안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어 긴장을 풀어 주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준다고 한다. 또 혈액 순환과 근육 이완, 소화 촉진에도 도움이 된다니 우리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소임이 틀림없다.   박장대소를 하면 엔도르핀을 포함해 여러 가지 쾌감을 주는 호르몬이 생성된다고 한다. 또 1분 동안 웃으면 10분의 조깅 효과를 얻을 수 있단다. 웃는 사람에게는 백약이 필요 없는 셈이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웃어야 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억지라도 활기차게 온몸으로 웃는다면 웃음의 효과는 동일하다고 한다. 웃을 일이 없어도 웃으면 웃을 일이 저절로 생긴다고 하니 억지로라도 웃어야 할 것 같다.   심리 전문가들은 우리가 걱정하는 것의 80%는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고, 12%는 나와 상관없는 것이고, 8%만 걱정할 만한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또 갈까 말까 하는 길은 가지 말고, 먹을까 말까 하는 음식은 먹지 말고, 만날까 말까 하는 사람은 만나지 말고, 참을까 말까 할 때는 참으라고 한다.   이런 우스갯소리를 읽은 적이 있다. 장례를 치르고 무덤에 가보면 껄껄 하는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웃는 소리가 아니라 ‘좀 더 사랑할 껄, 좀 더 즐길 껄, 좀 더 베풀며 살 껄’ 하는 후회의 ‘껄껄껄’ 소리라는 것이다. 죽어서 ‘껄껄껄’ 웃지 말고 살아서 ‘하하, 허허, 호호’ 웃으며 삽시다. 행복한 사람이 웃는 게 아니라 웃는 사람이 행복해진다고 한다. 이진용 / 수필가열린 광장 교통사고 후유증 심리 전문가들 혈액 순환

2024-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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